큐라레를 추억하는 사서들

thumnail_image 조유하17 [조유하17]
큐라레의 서재

[이벤트][루흐]망령의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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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에 있는 기분이었다. 물 속에 잠긴 듯한 끝없는 안식 속에서 부유하다가, 꿈에서 깨어나듯 갑자기 확 끌어올려졌다.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뭡니까, 또."


내 눈 앞에서 해맑게 헤헤헤 웃고 있는 두 소녀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그르렁거리듯 내뱉었다. 저쪽은 마법도서관 사서, 미우. 저쪽은 분명 왕이라고 했었는데...


"저는 사자왕. 사마르칸트의 대장군에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아무튼, 나는 쉴 팔자는 안 되는 것 같다.



-



"그러니까, 여기가 가상 차원이라는 겁니까?"


"우웅, 말했다시피 왕들의 차원에 큰 문제가 생겨서, 지금 차원이 매우 불안정하다고나 할까나, 붕괴 직전까지 꼬였다고나 할까나... 그걸 이용해서 가상의 차원을 만들었어. 바깥 차원보다 시간의 흐름도 매우 느린 꿈 속의 차원이야. 장자의 도움으로 만들었달까나..."


"무슨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상의 차원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지금 이곳이 남아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이 공간은 사마르칸트의 연무장이었다. 지금은 남아 있을 리가 없는 곳이다. 매우 먼 과거에 그 깃발 녀석에게 처참히 짓밟혔을 장소니까.

대충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사자왕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금 왕들의 차원이 큰 위험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에게는 적을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강해지도록 수련을 도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거 봐, 나는 쉴 수가 없는 운명이었어. 혼돈으로 돌아간 이후로 나만큼 많이 끌려 나온 마도서는 없을 거야.

속으로 투덜거리긴 했지만, 사자왕의 눈빛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왕의 눈빛이다. 다소 미숙해 보이지만, 저 눈빛만은 정말로-


"... 왕의 말씀이라면 얼마든지."


쌍검을 꺼내 들었다. 사자왕이 안심했다는 듯 표정을 풀고 대응하듯 무기를 꺼내 들었다. 미우라는 사서도 헤에, 하고 웃으며 수련 보조를 자청해왔다.


간만에 움직이는 몸은 가뿐했다.



-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웅?"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바깥 시간으로는 한 시간 정도 지났다고 했다. 잠깐 쉬는 시간을 갖느라 나와 사자왕, 마법사서는 연무장 한가운데에 주저앉아 있었다.

첫날부터 궁금했지만, 일부러 감춘 듯 하여 묻지 않았던 궁금증을 결국 입에 담았다.


"이곳은 장자라는 분이 누군가의 꿈으로 만든 차원이라고 했지요."


"우웅, 약간 다르지만 비슷해."


"당신들은 분명 사마르칸트를 모를 텐데요."


"...."


"숙소, 연무장, 길거리.. 이곳은 정말 정교합니다. 이 꿈을 제공한 사람은 분명 오랫동안 이곳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만."


"우웅...."


"주군입니까?"


마법사서와 사자왕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사서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보아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역시 그랬구나. 그렇다면,


"주군도 이곳에 있는 겁니까?"


"우웅... 솔직히 말해서, 있어. 있는데..."


"주군이 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거군요."


"우웅... 그건 그런데, 티무르는 나쁜 뜻이 있는 게 아니라,"


"아뇨, 괜찮습니다. 압니다. 저와 몇 달 동안이나 같이 머무르면 미련이 생길 것 같다고, 안 만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헤에... 루흐는 티무르를 정말 잘 아는구나."


주군이라면 그럴 테다. 정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래도 저건 너무 티나지 않나.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왕궁의 탑에 눈길을 주었다. 주군이 머무르던 곳이다.

내가 눈길을 던지자, 창문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누군가가 황급히 커튼을 치고 그 뒤로 사라졌다.

이건 뭐, 한두 번도 아니고 매일같이 이러니 모른 척 하기도 힘들다.


"자, 이제 휴식은 이만 하고 다시 수련할까요."


"예!"


커튼 뒤에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웃음을 꾹 참은 채 검을 들었다.

진심으로, 내가 강하다는 것에 깊이 감사했다. 망령에겐 정말 사치가 아닐 수 없었다.


-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군요."


"헤에, 정말 고마워!"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련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법사서와 사자왕과 인사를 나누고, 마법사서가 차원을 붕괴시키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봤다.

사서는 자리에 앉아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었다. 얼마나 걸린댔지. 왕궁 쪽에 눈길을 주었다. 여느 때처럼 커튼이 확 닫히며 사람의 인영이 사라졌다.


"엇, 어디 가시는...!"


사자왕과 사서를 뒤로하고 왕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낯익은 건축물들을 지나고, 복도를 꺾고 근위대를 지나,


"주군."


왕궁의 탑 안, 주군의 방 앞에 도달해 숨을 고르고 소리내어 그를 불렀다. 살짝 열린 방문 바로 앞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에 가까이 붙은 채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잘 지내십니까?"


"...그래."


내가 잘 알고 있는, 하지만 약간은 달라진 목소리. 분명히 그였다.


"주군, 행복하십시오."


내 말과 함께, 차원 붕괴가 시작되었다. 세계가 조금씩 사라져갔다.


"꼭, 행복하십시오."


세계와 함께 내 모습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걸 느꼈다. 다시 혼돈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몸에 감각이 서서히 없어지고 나른한 편안함이 찾아왔다.

시야가 암전되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다급히 열리는 문과 그 뒤에서 튀어나온,

살짝 일그러진 채 다급히 나를 소리쳐 부르는 그리운 얼굴이었다.


이걸로 충분해. 망령에게는 과한 사치지.

진심을 담아 한번 웃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생각마저 할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다시금 가라앉았다.



#솜씨자랑 #루흐 #티무르 #사마르칸트 #루흐야어흑어흐흑행복해루흐야어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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